[다산칼럼] '과학'과 '과학적(的)' 사이의 머나먼 거리

입력 2023-10-02 17:28   수정 2023-10-03 00:12

물리학자들은 수학자를 부러워했다. 공식 하나로 삼라만상을 설명해내는 신묘한 아름다움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뉴턴은 간명한 공식 하나를 내놓고 우주 원리를 꿰뚫었다며 흐뭇해했다. 아인슈타인은 공식 하나로 반증해 고인이 된 뉴턴의 흐뭇함을 깨버렸다. 그 아인슈타인, 생전에 자신의 공식이 양자세계에서 먹통이라는 후배의 반증에 직면했다. 믿지도 않았던 신까지 모셔 와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방어해봤지만 그의 흐뭇함도 이미 깨진 상태! 이론을 반복 격파하며 성장해온 물리학은 우주 전체를 꿰뚫는 간명한 통일장이론을 찾지 못했고 여전히 수학을 부러워한다. 그래도 물리학은 우주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경제학자는 그런 물리학자를 부러워한다. 경제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신묘한 공식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포탄을 쏘면 어디에 떨어질지를 척척 예측하는 물리학자를 보며 금리 0.5%포인트를 올리면 성장률이 얼마나 떨어질지를 예측하려 애쓴다. 그런 시도, 성공한 적 별로 없다. 그래도 공식을 남발해가며 지나간 사건은 얼추 설명해내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국면에만 들어서면 여전히 질퍽댄다. 오죽하면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경제학자의 헛소리에 속지 않기 위해서라고 할까! 이 와중에 경영학은 경제학을 부러워한다. 그나마 과거라도 얼추 설명해내니까. 경영학이 하는 과거 설명은 너저분한 데다 의견 일치도 잘 안된다. 이렇게 말한다고 질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나도 경영학으로 학위를 했고, 팔은 안으로 굽는 게 지극히 정상이라고 믿는 사람이니까. 상황이 이런데도 경제경영학자들은 자기들이 사회 ‘과학’을 하고 있다고 우긴다. 더 걱정되는 건 ‘과학적(的)’이라는 말만 붙이면 자기 주장의 설득력이 자동으로 높아진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실이다.

그래서 ‘과학’이란 게 무엇일까? 오래전, 카를 포퍼가 이런 논란을 대충 수습한 바 있다. 과학은 ‘반증 가능성에 열려 있는 학문 체계’이고 과학 이론은 ‘반증이 가능한 주장’이라는 명쾌한 논리다. 뉴턴-아인슈타인-양자물리처럼 실험이든 관찰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기존 이론이 틀렸다는 반증과 비판을 할 수 있고, 그런 반증과 비판에 개방적이면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신은 존재한다’는 명제는 끝없는 우주를 탈탈 털어가며 조사해서 어느 구석에도 안 계신다는 게 깔끔하게 확인돼야 반증이 가능하니 과학적이라 하기 어렵다. 참, 거짓을 떠나 그냥 과학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반면 ‘스완(백조)은 하얗다’는 주장은 어디서든 검은 놈 하나만 발견하면 반증이 성립하니 과학이다. 결국 호주에서 검은 놈이 발견됐다. 그런 반증에 열려 있어야 과학이니 과학자에겐 내 주장이 확고부동하다는 억지가 가장 큰 금기다.

그런 포퍼를 깊이 흠모해 그의 철학을 공부하려는데 생활비가 걱정인 제자가 있었다. 잠시 포퍼의 관점을 활용해 투자를 좀 하기로 작정했는데 생활비로는 감당이 어려운 수준으로 돈을 벌어버렸다. 그 학생, 이름이 조지 소로스다. 둘 다 자유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다. 그들처럼 자기 주장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을 장착한 태도와 그런 학문 시스템을 과학이라 한다면 자주 틀리는 사회 ‘과학’도 과학일 수 있다. 물리, 경제, 경영으로 갈수록 연구 대상이 가만있지 않고 자꾸 꿈틀거리니까 명징하지 못할 뿐이다.

기존 이론은 공상적이고 우리 이론은 과학적 공산주의라고 대차게 주장한 게 레닌주의자다. 우리 주장이 ‘과학적’이니 입 닥치라는 태도다. 포퍼가 과학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그들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던 이유다. 그들의 ‘과학적’인 이론은 돈도 벌지 못했고 쫄딱 망했다. 우리도 그랬다. 유신 시절, 정부는 그게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치라 강요했다. 스스로도 동의 못하는 걸 억지로 가르치는 선생님의 처연한 표정이 아직까지 기억에 선명하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었고, 많이 양보해도 한국적이지도 않았다. ‘닫힌 사회’였을 뿐이다. 그래서 ‘OO적’이라는 표현은 아직도 섬찟하다. 어찌 됐든 과학적이라는 건 ‘내 말이 맞다’란 뜻이 아니라 ‘나는 열려 있고 겸손하다’는 의미로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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